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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by 팀과 라미

by beactive71 20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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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작은 체구의 90세 할머니 노마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뒤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아들, 며느리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수술과 항암 치료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고통스럽게 연장하는 대신 미스 노마는 '여행'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았음을 보여준다. 자신이 사는 마을을 크게 벗어나본 적 없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90세의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의 꼼꼼한 배려와 챙김 덕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다채로운 경험을 하며 길 위에서 1년을 보낸 후 남편과 딸의 곁으로 떠난다. 노마가 여행 중에 보여준 의지와 순수함, 적극적인 면모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들 팀과 며느리 라미의 인생을 대하는 방식과 사유가 매력적이고 깊은 울림을 준다. 개인에게 닥쳐오는 삶의 위기나 슬픔, 고통을 어떻게 받아 들고 헤쳐나갈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우린 분명 혼자가 아니며 누구와도 연대하며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걸 깨우쳐주는 책이다. 또한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웃트라인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하고 포기하는 대신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열린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 타인과의 공존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겨울 한 철을 함께 보내며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과의 순수한 동행, 캠핑장이나 여행지에서 잠깐 스쳐 지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대화와 공감의 경험을 언젠가는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책 속의 문장

아무도 정치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4~5달 정도의 겨울 한 철이었지만 그동안만이라도 바깥세상의 소식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해변의 거주민들과 함께 겨울을 보냈다. 전에 살던 마을에서는 이웃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교통 체증도 없었고, 뉴스도 없었고, 지켜야 할 일정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 존재하는 것에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지구와 함께하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면 충분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속한 존재라고 느꼈다.
 
물론 길 위에서의 생활이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들도 가치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워야 하거나 그렇게 세운 계획이 다 틀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갔다면 하지 못할 뜻밖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계획이 틀어진다는 것은 미국 서부의 깊고 푸른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가벼운지를 깨닫는 순간을 맞는다는 의미기도 했다. 
 
길 위의 삶은 단순하고 자유롭다. 라미와 나는 단순함과 자유가 현대인의 삶에서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해독제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걱정거리도 적었다. 알람시계 대신에 태양이 뜰 때 일어나고 태양이 질 때 잠자리에 들며, 몸의 리듬에 맞추어 하이킹을 하고, 순간을 즐기고, 책을 읽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았다. 자유롭게 살며 가볍게 여행했다. 바하칼리포르니아는 우리의 북극성이었다. 뜻밖에 얻은 에어스트림은 우리의 삶을 구해주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 무엇이든 눈과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삶은 부서지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머릿속에만 있을 뿐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항상 우리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못 본 척하며, 말로 표현해야 할 것을 다음으로 미루곤 한다. 팀과 내가 계속해서 다음에 하자고 미룬 것은 바로 팀의 부모님과 나이 듦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목구멍에 걸려 있던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왜 우리는 항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기만 했을까?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삶의 마지막에 직면하는 순간 부모님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노화와 질병은 우리의 계획을 봐주지 않는다. 자기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자기들이 때가 되었을 때 찾아와 인생을 휘저어놓는다.
 
우리는 어머니의 웃음이 우리 두 사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고, 그런 점 때문에 길을 나선 첫날 내 안에 커다란 두려움이 싹튼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어머니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의 보살핌에 대한 대가로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소중한 것을 주고 있었다. 순수한 즐거움, 모험을 두려워 허지 않는 정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하고자 하는 태도, 모든 걸 버렸기 때문에 모든 걸 즐기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러자." 하고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면 그냥 그것으로 다음 여정을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이 보여주려 하는 것을 믿고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어떤 경험도 하찮은 것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단순히 그냥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더 생기 있고 충만하게 살아가며,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에 대해 "그래, 좋아!"라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적극적으로 세상에 다가가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인생을 즐길 준비를 마쳤다. 
 
"요양원에 들어갔더라면 결코 이런 걸 맛볼 수 없었을 텐데. 정말 좋구나."
 그러고는 차가운 맥주를 쭉 들이켰다. 
 어머니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띤 것인지 깨달은 나는 전율을 느꼈다. 드디어 우리는 목적을 찾았다.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펴온 여성이 이제 생의 마지막 목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여행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마가 팔을 활짝 벌렸을 때 나는 엄마가 온몸으로 우리에게 완벽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꼈다. 그날 우리는 신뢰야말로 자유의 가장 심오한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뢰가 없으면 즐거움을 감옥에 가두고 그저 본인의 숨을 연명해 나가기에만 급급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내 주위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다른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 놓은 수많은 작은 장애물까지도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날 산이 우리를 안아주고, 서로가 서로를 꼭 안아주는 것을 느꼈다. 내려놓는 기쁨, 그리고 많은 노력을 통해 서로를 붙들어주는 것에서 생기는 자유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우리는 물론 의약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아흔 살 노인을 돌보는 데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을 먹고 그 때문에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진다면 그 약이 진정 좋은 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약을 먹고 하루 종일 졸음만 몰려온다면? 진통제가 통증은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이것저것 부작용만 유발한다면? 의학계에서도 이제 삶의 질을 주요한 문제로 보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소망한 것이 생의 마지막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고, 우리는 단지 그 소원을 들어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가 스스로 정해놓은 취침 시간 9시에 맞추어 침대로 갈 때 나는 어머니의 오른손을 꼭 쥐었다. 어머니는 왼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 둘은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침실까지 가는 시간이 정말 신나고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우리는 같은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고부간의 의식에 곧 팀까지 참여해 춤과 노래를 곁들여 침대까지 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잠들기 전의 기도와 같은 취침 의식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계획에도 없던 인디언 부족을 찾아가 이들의 축제를 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가족으로서의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한밤 중에 세 가족이 갖는 소박한 취침 의식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거창하지 않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일상의 의식이 서로를 단단한 애정으로 감싸주고, 고난의 시기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하루에 5분 정도 시간을 내어 가족의 존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은 의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은 배를 타고 나가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우리는 선착장에서 릭과 조 부부 그리고 그들의 막내 아들을 만났고, 엄마는 배의 고물을 통해 보트에 올라타서는 여러 장비를 갖추고 있는 앞자리에 앉았다. 릭은 배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몰아 새우잡이 어선들 사이를 빠져나온 후 마지막 부표까지 무사히 지나서는 공해로 보트를 몰았다. 일단 공해로 나오자 속력을 내어 화장한 재가 파도를 타고 포트마이어스비치로 돌아오지 않을 만큼 먼바다로 내달렸다. 태양은 눈부셨고, 우리 배 쪽으로 다가오던 파도는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내며 부서졌다.
 
연안을 벗어나자 릭은 엔진을 껐다. 사니벨섬의 하얀 모래 해변이 저 멀리 보였다. 그는 두 아들이 사랑했던 루크 브라이언의 <맥주를 마시며>라는 노래를 틀었고 우리는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었다. 이 가족은 두 아들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과 이들이 성취한 것, 그리고 각자의 개성에 대해 사랑을 담아 이야기했다. 
 
이 의식은 아름답고 상징적이었다. 재를 바다에 뿌리는 동안 돌고래가 물을 뿜었고 마치 두 아들을 상징하는 듯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엄마는 앙상한 손으로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그 순간 엄마 스스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들의 재를 바다에 뿌리러 온 릭과 조 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팀과 노마 할머니는 상실의 슬픔을 드러내고 작별하는 방식과도 조우하게 된다.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묻어둔 채 개인의 영역에서 따로 회상하는 방식보다는 표면으로 끄집어내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하는 방식이 덜 가슴아프고 덜 외로울 것 같다. 또한 같은 종류의 상실을 경험한 타인과의 교감은 그 자체로 치유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젠 팀과 노마도 떠나간 가족들이 생각나면 혼자 회상하고 그리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테이시는 정말 용감하고 의젓한 사람이었고, 내게는 영웅이었다.
 나는 그런 스테이시를 잃었다. 우리 가족 모두 스테이시를 잃었다. 하지만 아무도 스테이시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스테이시가 죽었을 때 스테이시를 한번 잃었고, 침묵을 통해 스테이시를 다시 한 번 더 잃었다. 아무도 스테이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스테이시 인생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스테이시가 남긴 공백을 그녀에 대한 기억으로 채우지 않았다. 대신 스테이시의 부재를 각자 개인의 슬픔이라고 하는 상자 안에 가두고 말았다.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도 스테이시에 대한 말을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난 세월 동안 스테이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나는 좌절감만 느꼈다. 그렇게 아버지는 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사랑하는 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을까? 엄마는 아버지의 상심이 너무 커서 그래서 그냥 침묵했던 것은 아닐까?
 스테이시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건 모두의 공동 책임이었다. 같이 모이는 기회가 있어도 그런 시간은 쉽게 지나갔고, 각자 마음에 장벽을 치고 슬픔을 안으로 껴안은 채 살고 있었다. 많은 가족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그저 좋게 지내기 위한 대화만 나누었고, 실질적인 알맹이는 대화에서 빠져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스테이시의 죽음은 나와 부모님 사이의 장벽에 큰 구멍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날것의 감정으로 서로를 대할 기회가 없었다. 슬픔과 고통의 외로운 길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서로 알지 못했다. 릭과 조를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엄마와 조는 날것의 슬픔 그대로를 안고 있었다. 서로 아닌 척할 필요도 없었고, 강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슬픔으로 인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창피해할 필요가 없었다. 여행은 우리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엄마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보았고, 허허실실한 모습도 보았으며, 엄마에게 모험심에 가득 찬 면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당신 안에 있는 단단한 그 무엇인가는 감추고 보여주지 않았다. 릭과 조는 우리에게 가족으로서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의 슬픔에 배인 진심과 아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겉으로 괜찮은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걸 그만둔다면 더 큰 슬픔을 느끼고 더 큰 아픔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더 큰 사랑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슬픔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엄마와 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마다 각자의 감정 언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가 슬픔을 나눈다는 것은 같이 운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좀 더 은밀한 것을 뜻했다. 손을 잡거나 상대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거나 잠시 상대방의 눈을 마주 보며 "지금 어떤 심정인지 다 알아. 다 보여."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가 스테이시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배를 타고 가던 날, 그리고 그 이후 두 분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서 엄마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엄마의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고통이 표면으로 조금씩 올라와 조의 따뜻한 가슴에 안기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이렇게 치유된다면 나도 치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같이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저마다 각자의 감정 언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달은 팀은 이제 비로소 엄마의 감정 언어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가족이나 지인의 감정 언어, 아니 그 이전에 나의 감정 언어에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어쭙잖은 말로 나를, 타인을 위로했던 순간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함께 있어 주는 것, 그 외의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지 말 것!!
 
팀과 결혼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무엇이든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정할 것을 약속했고, 둘째,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나중에 뒤돌아보면서 '그렇게 했었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우리 결혼 서약이었고 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동 캠프에서 지켜야 할 철칙이기도 했다. 
 
제프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가완디 박사가 '독립심'과 '안전'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나이 들고 아픈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저지르기 쉬운 잘못은 단순히 더 아프지 않게, 또는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오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그 이상의 것을 중요시한다.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이들이 의미 있는 인생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가완디 박사의 회상과 그가 책에서 했던 말이 단어가 아닌 느낌으로 다가왔다. 처음 열기구 탑승 계획을 세울 때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두려움이 모두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어머니의 눈빛을 보며 나는 평온한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주도하여 인생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특별한 한 해를 보냈다. 이제 남은 기간도 특별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인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을 고마워하며 그 기간이 얼마나 됐던지 간에 열심히 살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옛 일상으로 돌아간 첫날은 무척 좋았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퍽이나 안심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결코 아무것도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 전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해를 보냈다. 이렇게 멋진 한 해를 보내고, 이제야 겨우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 무렵 엄마를 떠나보냈다. 이제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를 일이었다. 엄마, 아빠, 스테이시를 꿈에서 보고 난 후 느꼈던 평온과 고요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내가 계속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가 항상 말하던 대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는 것만은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우리는 엄마의 일기를 읽으면서 함께 울고 웃었다. 일기를 읽다 보니 열기구 풍선을 탔던 때와 같은 큰 사건뿐 아니라 작고 소소한 것까지도 모두 다 추억하게 되었다. 그날의 날씨, 엄마가 읽었던 책, 링고가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괴고 쉬던 일, 그리고 산맥을 타며 드라이브했던 추억. 
 
작년 한 해 동안 엄마에게 정말 충분히 잘해드리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재미있는 날들도 있었지만 지루한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일기장을 읽으며 엄마가 아주 작고 소소한 것에서도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꾼 날, 이어지는 손님들의 방문, 길에서 우연히 토끼를 보던 날, 라미와 함께 직소 퍼즐을 다 완성한 순간, 그리고 고향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낼 엽서를 고르던 일. 이 모든 순간에 엄마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순간을 살뿐이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 순간 내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아름다움과 즐거움, 사랑 그리고 가능성으로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엄마는 바로 그렇게 살다 떠났다. 
 
엄마는 항상 즐거움이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사랑이 사랑을 낳고, 평화가 평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수줍어할 때마다, 그리고 지도상의 한 점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엄마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함께 여행하면서 엄마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인생에 대해서 "Yes!"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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