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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슈테판 츠바이크
- 출판
- 다산초당
- 출판일
- 2024.11.01
한동안 책이 읽히지 않아 중단했던 밀리의 서재 구독 서비스를 재개했고, 읽을만한 책을 검색하다가 제목에 이끌려 고른 책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철학과 문예학을 전공했고, 유럽 각국의 언어와 문학에 정통했으며 시와 단편소설을 발표해 명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 미국, 브라질로 건너간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아내와 함께 1942년 2월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이 책은 사망하기 전 2년 동안의 기록을 엮은 것입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풍부한 사유가 깃든 문장들에 몰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두 9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에세이에는 자유를 빼앗긴 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작가로서의 의무감과 같은 무거운 주제의 글이 있는 반면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불행에 따뜻한 위로 한 마디 건네지 못한 회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소설 속 인물인 독일 역사학 교수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히틀러에 의해 실현되는 현실에 대한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의 에세이를 통해 삶의 가치, 용기, 돈, 평범한 일상, 자유, 전쟁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1. 걱정 없이 사는 기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그를 잊는다면, 그것은 배은망덕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거나 생색내는 일 없이 원하는 대로 자기 일을 했다.
안톤은 정말로 직업이 없었고, 실제로 온종일 산책했다. 매일 아침 밖으로 나가 도시 이곳저곳을 한가롭게 거닐었지만, 사람이 이마 아래에 가질 수 있는 가장 주의 깊고 현명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는 모든 것을 관찰했고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안톤의 특별하고 독특한 점은, 여러 시간 힘들게 일하고도 그날 하루 필요한 것보다 많은 보수는 완강히 거부했고, 필요한 게 없는 날에는 돈을 아예 받지 않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산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에 투자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완고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기술이나 노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거래하지 않고 부탁받은 모든 일을 당연한 듯 흔쾌히 처리한 후 즉각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히 그를 존경하는지 알아보려면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 코트 차림의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 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나는 종종 안톤을 생각한다. 그토록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을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모두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현재 나는 몇 년째 안톤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신은 물론 사람들 역시 이 남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그가 계속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면 그는 분명 우리 모두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돕지 못한 우리의 주저가 그의 인생 경로 변경에 의심의 여지없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날 아침 우리의 말 한마디, 다정한 몸짓 하나가 그에게 불행과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어쩌면 줄 수 있었으리라.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른 말을 못 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3. 나에게 돈이란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일, 사랑, 우정, 예술, 자연 등)가 더욱 중요해졌다.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보존하고 수호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돈의 미친 죽음의 춤은 3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런 다음 예전의 가격 질서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돈과 나의 예전 관계는 돌아오지 않았다. 돈의 마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한때 나는 돈의 힘과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생활 감정이 뗄 수 없이 단단히 엮여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4. 센강의 낚시꾼
이 시대의 우리는 정말로 세계적 격변을 모두 목격하고 그것에 빈틈없이 참여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묻는 게 더 낫겠다. 이 시대의 우리는 쏟아지는 이 모든 사건을 매일, 매시간 주의를 기울여 따라갈 여력과 참여의식을 충분히 가졌을까? 솔직하게 자문해 본다면,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끊임없이 닥치는 높은 긴장에 대처할 여력이 없고, 우리는 그저 이따금 좌절과 절망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더라도 일상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
역사적 시대의 모든 낭만적 상상을 진실에 맞게 지우면,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사건을 경험하고 그에 참여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잊으려 애쓴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언뜻 부끄러운 고백처럼 보인다. 자기 시대에 진정으로 관심을 두고 참여하고 동시대 사람의 공포와 괴로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대다수 사람이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부당한 비난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연법칙은 우리의 참여 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2000년 전에 이미 그리스 극작가들은 이것을 비극의 법칙으로 알고 있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는 극의 길이를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비극이 한없이 길어지면, 그것에 몰두하는 능력이 오히려 감소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이 숙명적 비율을 체감하고 있다. 세계의 극이 길어질수록 장면은 점점 더 끔찍해지고, 사건이 자극적일수록 그것을 진심으로 연민하는 능력이 더욱 줄어든다.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마음을 파괴하고, 시대가 우리에게 연민을 더 많이 요구할수록, 우리의 지친 영혼이 느낄 수 있는 연민은 더 줄어든다.
그러므로 전쟁 첫해 말에 우리가 더는 전쟁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적 시대'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잠시 떠나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면, 이는 그것을 감당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선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연민의 힘은 발휘될 때마다 점점 더 많이 소모된다. 사람들은 이런 소수의 불운을 매번 함께 괴로워하며 상상하고 공감할 수는 없었고 그러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세계의 재앙이 길어질수록 고통과 연민 사이의 비례 관계가 점점 깨졌다.
자연은 어떤 중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히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우리가 때때로 시대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 피조물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연의 잘못이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세계의 폐허를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5. 영원한 교훈 - 로뎅에게서 얻은 교훈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그의 작업실에 머물렀던 그 한 시간에 나는 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선하고 유효할 수 있는지 알았다. 자기 자신과 모든 목표 및 목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인 완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6.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를 위한 추도사
어쩌면 선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드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연의 많은 것이 그렇듯,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가 실천하며 살았던 그런 고귀한 형태의 선함은 매울 드물 것입니다. 흔히 선함은 약한 마음, 다른 사람의 강한 요구에의 굴복, 수동적 태도, 심지어 약점으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의 선함은 미덕이자 힘이었습니다. 그의 선함은 능동적이었고, 치유와 격려의 힘을 신비하게도 늘 균일한 규모와 강도로 발산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의 선함을 심지어 방사능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더 많이 내어줄수록 그는 더욱 그 자신으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늘 활동하는 깨어 있는 선함, 그에게 중요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선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한 인간의 선함이 아니라, 한 시인의 선함이자 상상력이 풍부한 본성에서 나오는 선함, 가장 귀중한 작은 감탄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생산적인 선함, 의식적으로 고안된 지적인 선함, 언제나 대상이 명확한 선함이었습니다.
삶의 정점에서도 깊은 나락에서도 그는 어떤 정당, 집단, 파벌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가에게 허용된 유일한 자부심인 빛나는 도덕적 독립을 지키며 앞을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그 무엇도 그를 속이거나 미혹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관찰하는 그의 온화하고 짙고 따뜻한 두 눈은 한결같이 맑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어떤 것도 그의 주의 깊은 시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말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의 얼굴에 숨겨진 표정을 읽었고, 가장 작고 가장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알아차렸으며, 정말로 모든 것을 기억했습니다. · · · 나는 그처럼 선명하고 생생한 기억을 풍부하게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의 기억은 비길 데 없는 보물창고였고, 그 덕분에 그는 예술가로서 수년의 창작 생활에도 자신을 빈약하게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눈빛, 그런 기억력, 그런 비범한 감성, 그런 따뜻한 심장을 가진 그는 처음부터 예술가가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했고, 그렇기에 위대한 작가가 된 것입니다.
7. 거대한 침묵
오늘날 발언의 자유를 가진 모든 사람의 첫 번째 의무는, 이런 당연한 권리를 빼앗겨 직접 발언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발언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침묵, 뚫을 수 없는 침묵, 끝없는 침묵, 끔찍한 침묵. 나는 그 침묵을 밤에도 낮에도 듣는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내 귀와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어떤 소음보다 견디기 힘들고, 천둥보다, 사이렌의 울부짖음보다, 폭발음보다 더 끔찍하다. 그것은 비명이나 흐느낌보다 더 신경을 찢고 더 슬프다. 수백만 사람이 이 침묵 속에서 억압받고 있음을 나는 매 순간 깨닫는다. · · · 나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이 침묵은 인위적이다. 강제, 명령, 강요된 위협적 침묵, 공포의 침묵이다. 거짓으로 직조된 거대한 장막 아래에서 나는 생매장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본다. 나는 이 침묵 뒤에서 재갈이 물리고 입이 틀어막힌 수백만 목소리의 굴욕과 분노를 인식하고 느낀다. 그들의 침묵이 내 귀를 찢고, 밤낮으로 내 영혼을 때린다.
적어도 우리는 언어를 빼앗기지 않았고, 육체가 폐를 통해 숨 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그 언어를 통해 숨을 쉰다. 영혼이 억압받으면 우리는 말을 통해 그것을 해방할 수 있고, 자신 있게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4000만 명의 형제들에게는 약자의 마지막 무기인 희망과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수천의 가정, 수백만의 마음에서 이런 간절한 비밀 기도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영원한 정의가 그들의 침묵의 외침을 듣게 되리라 뜨겁게 확신할 수 없다면,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8. 이 어두운 시절에
동료 여러분, 인류가 짐승이 된 명백한 퇴행 때문에 우리는 믿음과 낙관을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이 시련에서 얻은 것도 한 가지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우리 각자가 정신적 자유의 필수성과 신성함을 그 어느 때보다 새롭고 절절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삶의 가장 신성한 가치를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몸과 숨을 분리할 수 없듯이 영혼과 자유를 분리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위해, 먼저 어둠의 시간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야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인간의 존엄이 훼손된 적이 없었고, 인간이 노예로 전락하여 학대당한 적도 없었으며, 하느님의 모든 자녀가 이토록 처참하게 모욕당하고 고통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류가 인간의 영혼에 자유가 필수임을 지금처럼 명확히 인식한 적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폭정과 억압을 증오한 적도 없었고, 지금처럼 입에 재갈을 문 채 구원의 소식을 갈망한 적도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발언이 한마디라도 지하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전해진다면, 그들은 안도하며 자신들을 억압하는 독재자가 성급하게 승리를 만끽했음을 감지할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뿐 아니라 모든 인간, 모든 국가, 전 인류의 자유를 원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유국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자유국가에서 우리가 누리는 바로 이 자유가 우리 작가들에게, 우리 시인들에게 신성한 의무를 부과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의무일 것입니다. 이미 반쯤 파괴된 혼란스러운 세계 한복판에서,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도덕의 힘과 무적의 정신을 흔들림 없이 믿게 하는 것은, 오늘날 말과 글을 가진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합시다. 각자의 나라를 위해,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작품과 삶으로, 이 의무를 완수합시다. 이 어두운 시절에 우리가 자기 자신을 믿고 서로를 신뢰할 때만, 우리는 명예롭게 우리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9. 하르트로트와 히틀러
나는 최근에 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묵시록의 네 기사」라는 책을 우연히 다시 접했다. 나는 이 소설을 1916년에, 그러니까 베스트셀러가 되어 모두가 읽을 때 읽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훌륭한 묘사는 어렴풋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던 독일 역사학 교수 율리우스 폰 하르트로트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매우 과장되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당시 나도 이렇게 생각했다) 독일인의 정치적 열망을 선포했다. 지나친 범 게르만주의를 옹호하는 이 인물은 내가 보기에 완전히 비현실적이었고, 그래서 그의 오만하고 독단적인 이데올로기는 그저 작가의 악의적 과장일 뿐이라 여겼다.
25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블라스코 이바녜스에게 사과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전에 내가 반미치광이 캐릭터로 여겼던 하르트로트가 이제 다시 읽어보니 실은 지금까지 발명된 그 어떤 인물보다 현실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르트로트의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들이 히틀러를 통해 7000만 독일인의 공식 신념이 되었다. · · · 한 작가의 상상이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25년 전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발명한 허구의 인물이 선포한 내용을 보면 히틀러의 세계 지배 욕구가 결코 새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어떤 종류든 모든 도덕은 이런 무자비한 권력 행사에 방해만 될 뿐이고, 여기서 이미 이 매력적인 교수는 나치 정책의 전체 개념을 정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의한다.
"개인 차원에서 도덕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덕은 개인이 규정을 더 잘 준수하고 규율에 더 순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도덕은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국가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채택된 수단의 장점과 효율성뿐입니다. 약속과 법률 같은 것에 왜 신경을 씁니까? 독일은 힘을 가졌고, 힘은 새로운 법을 만듭니다. 역사는 승자에게 정당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은 하르트로트가 그토록 바라던 전쟁 방법을 설명하는 대목인데, 그가 꿈꾸는 위대한 독일에 대한 예언이 너무나 정확했다.
"지금까지는 오직 군인들만 전쟁을 치렀지만, 이번에는 과학자와 학자들의 전쟁입니다. 대학은 참모본부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세계 최고인 독일 과학은 혁명가들이 군국주의라 부르며 경멸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참합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만이 정의를 실현하고 우리는 오직 전쟁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모두에게 강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군대가 우리의 문화를 전파할 것입니다."
"가장 유능한 장군들에 다르면, 테러는 적의 지능을 약화하고 적의 활동을 마비시키며 적의 저항을 깨뜨리기 때문에 신속한 승리의 유일한 수단입니다. 전쟁은 가혹하고 잔인할수록 더 짧아집니다. 그러므로 독일은 전쟁이 길어지지 않도록 아주아주 잔인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독일인을 잔혹하다 여겨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잔인함은 그 반대인 자비심과 다름없습니다. 승자가 잔인해야 패자는 더 빨리 항복할 것이고, 그 결과 세계는 덜 고통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에 필요한 모든 자유, 즉 경제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퇴폐적이고 무분별한 민족과 열등한 인종만이 평등과 민주주의 이념에 현혹되어 정치적 자유를 걱정합니다. ( · · ·) 독일 정신이 지배권을 쥐는 즉시 자유를 조직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모든 국가는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조직되어야 합니다. 모든 개인은 모든 사회적 과제에 동원되어야 합니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개인은 더 높은 지도자에 복종해야 하고 지도자의 감독 아래 최대한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완벽한 국가가 만들어집니다."
오늘날 히틀러가 전 세계에 강요하려는 이 모든 계획은, 너무나 진짜 같은 허구의 인물, 하르트로트에 의해 고안되었다. 우리는 세계 지배의 꿈이 독일 국민의 무의식 속에 이미 늘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히틀러는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25년 전에 하르트로트의 입을 빌려 예언했던 것이 그의 광기를 통해 실현되었을 뿐이다. 고립된 몇몇 개인의 사악한 꿈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수백만의 소망이 되었고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되었다.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은, 작가가 정치학 교수보다 당대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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