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남동 서점에 반하다
요즘 소설 읽기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을 읽으며 재미와 공감, 위로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동네의 평범한 서점에 모여드는 상처 입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중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하루 10분 남짓의 숨통 트이는 시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그런대로 살만하다는 문장을 읽으며 저도 그 10분을 찾는데 당분간 몰두해 보자는 작은 다짐을 해봅니다. 어쩌면 그 찰나 같은 순간이 우리가 오늘을 사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숨통이 트이는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기분 좋은 느낌. 영주의 마음이 일터를 반긴다. 영주는 몸의 모든 감각이 이곳을 편안해함을 느낀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한다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서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이곳, 이 서점이, 영주에겐 그런 공간이다. 마음이 반기고 몸이 편안함을 느끼는 일터. 더불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으면서 나를 아껴주는 공간이 영주에겐 휴남동 서점입니다. 워커홀릭으로 살며 일과 가정, 가족 모두로부터 멀어진 상처를 안고 있는 영주와 취준생으로 여러 번 고배를 마셔야 했던 바리스타 민준에게도 휴남동 서점은 현재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학교 생활에 별다른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민철과 그런 아들이 안타까워 뭐라도 했으면 하는 민철 엄마, 기간제로 일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정서에게도 서점은 조용하게 품어주는 나무 그늘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제각기 나름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서점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내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는 휴남동 서점이 우리 동네에도 생기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매번 우리는 정답을 알고 정답에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고 어느 정도 확신하지만 지나고 나면 얼마나 부족하고 미숙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정답이 오답이었다는 걸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고 그 과정을 정면돌파해야만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책은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40이 넘어서면서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기억력으로 인해 책을 읽고도 머리에 거의 남는 것이 없어서 절망스럽던 순간이 꽤 잦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필사를 하며 읽은 부분들조차도 다시 보면 너무 생소한 내용들이라 그야말로 멘붕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읽어온 책 덕분에 저는 얼마간의 우울과 부정적인 삶의 태도로부터 조금은 멀어진 것도 같습니다. 책을 제외하고 나를 변화시킬만한 요인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확실히 책이 제 기억에, 그리고 기억 너머에 남긴 그 무엇이 축적되어 저를 조금씩 변화시켜 온 것은 확실합니다. 이제는 전과는 다른, 보다 효율적인 독서 방법을 통해 좀 더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 인간은 복잡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면에선 꽤 단순해. 이런 시간만 있으면 돼. 숨통 트이는 시간. 하루에 10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 살아 있어서 이런 기분을 맛보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시간.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시간 10분. 그 시간이 우리를 살게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언제 닥쳐올지 모를 절망의 순간에 이토록 소중한 10분의 가치를 떠올리며 견뎌볼 생각입니다.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은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을지라도 매일매일 성공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거든, 그 사람들 덕분에. 누군가는 그게 뭔 성공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공감 100%의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제 주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보며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저는 제가 잘 살았다고, 성공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흔히들 현재를 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말이 쉽지 현재에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죠? 현재에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는 걸 말해요. 숨을 쉴 땐 들숨 날숨에만 집중하고, 걸을 때 걷기에만 집중하고, 달릴 땐 달리기에만.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 과거, 미래는 잊고요.
Seize the day.
Carpe diem.
우리의 키팅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너만의 걸음을 찾아. 너만의 보폭, 속도, 방향. 네가 원하는 대로! 동서고금의 모든 명저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 바로 '현재를 살아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내가 머무는 시간과 공간에 온전히 집중하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순간에는 언제나 이 말을 주홍글씨 삼아 최대한 현재에 집중해 볼 생각입니다.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 주는 이야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작가의 바램대로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저 역시 상처받고 흔들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는 상관없이 내가 행하는 작은 노력이 오늘을 사는 이유가 되고, 그런 나를 가만히 지켜봐 주는 사람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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